[준찬] 어주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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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C ! 어째서 주인공을 죽인 건가요?
KPC . 권우찬
PC . 구원준
.
.
Chapter 1. 봄이 돌아오는 날.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멘트와 비교적 무른 형체가 부딪혀서 짓뭉개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차에 들이박는 걸 가정할까요.
분명 그것은 쓸데없는 행위일 겁니다.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잖아요.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뱉었던가요.
추락.
그리고 이어지는 3초.
맞아요,
딱 3초가 지났어요...
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금쯤이면 수줍게 두 뺨을 붉혀야 했을 주인공은
저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래요.
주인공이 죽어버렸어요.
지금 이 세상의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었나요.
사랑으로 시작하며 엔딩이 떨어지는 세상이 아니었습니까.
그 사이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땅이요.
분명 그랬을 텐데.
전제가 사라졌습니다.
시작하기는 커녕 회색 길 위로 붉은 핏물이 번져갈 거예요.
범인이 눈 앞에 있습니다.

권우찬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이
매우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상이 골라내고 또 골라낸 존재라는 것이 합당할 만큼.
언제나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채...

사랑을 시작했어야 할 대상을 난간 밖으로 밀어버렸는데도.
그것을 들켜버렸는데도.
담담한 어조로 말합니다.
구원준, 심리학 판정.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72 |
| 판정결과: | 실패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명확한 것을 읽어내기엔
상황으로 인한 아연함이 컸던 걸까요.
단 한 가지 사실만이 틀어박힙니다.
권우찬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상승+5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건 연애를 위한 게임이라고요.
마침내 사랑을 이루어서 가장 행복해질 수 있었을텐데.
평범하였던 당신의 삶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위험.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마저도 한없이 매력적인 당신의 친구는
한없이 위험합니다.
손바닥에 땀이 차오르는 불안으로 SANc 0/1.
/









(머리통을 열어서 볼 수는 없으니까 심리라도 알 수 있는 법이 없을까.) (심리학 판정)
구원준, 심리학 판정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실패 |
(그냥 머리통을 열어버리면 안 될까? 하........)
당신의 말이 끝맺음과 동시에
옥상 밑에서는 비명이 울립니다.
날카로운 소리가 담담한 대화 사이의 공백을 찢어버렸어요.
교실의 창문마다 고개를 내밀었는지 웅성거립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나와
조례를 서기라도 하는 것처럼.
딱 그만큼 소란스럽습니다.
아연함을 느낄 법도 한데,
범인임을 자백한 권우찬은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옵니다.
두 걸음을 다가왔고,
세 걸음을 다가왔을 거예요.
신발과 신발 사이에 한 뼘을 남겨둔 채로 호흡합니다.

날 밀어낼 거야?
더 없이 천진하게,
바닥으로 추락하듯이.
발목을 잡고 이성을 끌어내리듯이......
그는 속삭입니다.
마치 당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말하듯이.
예정된 사실을 말하더니,

발칙하게도,
불온하게도.
이런 제안을 꺼내는 것입니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인정받은 대상이......
다름 아닌 당신에게.
어떻게 하겠어요, 구원준.
어쩌면 경찰을 부르는 게 당연할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학생을 밀어버린 사람이 있다고.
다음으로는 주인공이 병원에서 깨어난다는
극적인 상황을 기대하고.
다른 공략 캐릭터와 문병 데이트를 하고,
그 사이에 당신은 다시 평범하게 지내는 거예요.
하지만,
하지만.
이런 충동도 일지 않습니까?
이탈해보고 싶다.
정해진 레일에서 빗나간 듯 달려보고 싶다.
언제나 교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동급생에게 느낄 생각은 아니었고,
살인자로부터 얻을 충동은 더더욱 아닐 테지만.
구원준.
수락했나요?
권우찬의 눈을 바라보면서요.
구원준, 관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우찬이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군요.
무척 기쁜 듯 밝게 웃음짓고 있습니다.
정말 뜻밖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눈동자에 들어찬 애정이 만일 물이었다면,
당신은 진작 물에 잠겼을지도 몰라요.
이곳이 옥상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 상승+10
더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는 걸까요.
우찬이는 당신의 손을 잡았습니다.
계단으로 이끄는 걸음은 거의 경쾌하기까지 합니다.
가방을 가지러 가야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미뤄둡시다.
어차피 일주일조차 아닌 시간이잖아요.
무조건 필요한 건 아닙니다.
권우찬도 교실까지 돌아갈 생각은 없는지 말합니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는 내내 유쾌한 기색으로 말했어요.

아마 경찰은 바로 알아내기도 어려울 걸.
그러니까 개학할 때까지 내내 형을 성가시게 할래.
방학에는 뭘 하고 싶어?
난 놀이동산도 가고 싶다.
맞아, 놀러갈 거면 영화관도 같이 가봐야지.
들뜬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립니다.
보폭은 서두르지도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습니다.
경쾌한 걸음입니다.
누군가 본다면 여유롭게 하교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마주잡은 손이 따듯합니다.
정말 이 손으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때 우찬이가 바로 옆의 미닫이 문을 열더니
휙, 당신을 끌어당깁니다.
비어있는 교실.
체육 수업을 하러 나갔는지 자리마다 교복이 놓여 있네요.
우찬이는 바로 등 뒤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서는 검지를 입술 앞에 대어서는 말했어요.

가까운 거리.
금방이라도 숨이 스칠 듯한 거리에서 권우찬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분필.
커튼에서의 먼지 냄새.
열린 창문 너머로 밀려드는 꽃잎.
지나칠 정도로 낭만적인 광경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 잠깐만 이렇게 있어봐...


응, 맞은 편에서.


그 와중에 복도에서는 이변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네요.
아무래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구원준, 듣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93 |
| 판정결과: | 실패 |
(귀가 침침하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4 |
| 판정결과: | 실패 |
???1: ......죽었다면서. 하필이면.... . 자살인가?
???2: 그건...... 그 녀석이...없지. 그게 당연...... .
???1: ...그렇지. ......하기는 하지.
창 밖으로 웅성거리던 소리가 넘어온 탓일까요.
대화의 일부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귀를 재차 기울이기도 전에 그들은 순식간에 멀어집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걸까요.
그래도 하나만큼은 분명합니다.
시체가 교내의 화제가 된 것은.

(당사자 빠아아아안히)










비어있는 교실.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
상황적으로만 본다면 더할나위 없는 청춘의 한 페이지인데도
상황은 이리도 다르군요.
창문 밖으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뒤늦게 확인한 학생들도 있었는지 비명이 반복됩니다.
체육 시간이 끝나서 이제 본 거라면
어느새 쉬는 시간의 종을 쳤을까요.
정신이 없는 겨를에 듣지 못했을 거예요.
혹은, 얼굴이 가까웠던 순간에
머릿속에 울리는 종소리라고 스스로 착각을 했던가.
어찌되었든 우찬이는 말합니다.


하긴, 이대로 여기에 머무를 수도 없죠.
곧 학생들이 들어설 곳이니까요.
당신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우찬이는 등 뒤의 문을 엽니다.
부드럽게 잡은 손을 당겨 이끌었어요.
먼저 한 걸음을 앞서 걷는 걸 보면
하교길의 경로를 다 정해두었나 봅니다.
교문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건물 뒤편의 후문을 향하는 걸까요?
/





(코너를 지나며 사람이 없는지 흘끗 둘러본다.)


아니면 혹시... 나 걱정해주는 거야?








(귀 근처에 손 모아 입가 가까이 대더니...) 후- (귀에 바람 불고선 히죽)

흐으아악 (몸 파르르;;;) 이게 미쳤나.......?


사소한 장난을 주고 받으며 함께 후문을 나섭니다.
등 뒤로는 사람이 죽었다는 혼란이 떠나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에서 유리되기라도 한 듯
우찬이는 정작 들뜬 걸음을 이어갑니다.
후문을 완전히 지나고서 골목에 들어선 지금마저도.
공략 캐릭터이지 않습니까.
히로인이요.
주인공은 가장 완벽한 짝이 되어줄 수 있었을 겁니다.
세상에 선택받은 만큼의 풍요를 누리면서요.
물론, 공략 캐릭터들에 비해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보통 주인공의 특징이 아닌가요.
그러니 스스로 운명을 잘라내 버린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구원준, 권우찬이 어떻게 보이고 있나요?
구원준, 관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1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 순간,
앞서나가던 우찬이가 걸음의 속도를 늦춥니다.
동시에 사방으로 벚꽃이 일렁입니다.
떨어져내리는 꽃잎마저도
마치 이 순간을 치장하는 듯 했어요.
분명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너무나도 짧은찰나의 봄.
고개를 돌리더니 오직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치 옥상에 있을 때처럼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았어요.
저 매력적인 웃음이 그저
묵인하기 위한 동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오히려 마음이 복잡할지도 모릅니다.
구원준,
사실 언제나 권우찬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입학을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 상승+10

초록 지붕.
아, 그러고 보니
벌써 도착했네요.
초록 지붕과 대문의 창살 너머로 보이는 잔디.
마당 한 구석에 심어진 노란 꽃.
어느덧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방학동안 같이 놀기로 했으니까.
안 까먹었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뭐, 어디 가고 싶다 했더라? 다 가자 그냥.

안 되겠다, 내일 형 데리러 올 테니까 기다려. 알았지?

마음대로 하세요~ 나야 좋지. 갈 때 심심하진 않겠네.

어차피 형 동생들이랑도 오랜만에 인사하고 싶었는데, 잘 됐네.
입학했을 때부터 등교를 같이 했던 터라 그런지
꽤나 익숙한 모양새 입니다.
약속을 받아내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선
돌아가려는 듯 한 손을 흔들어 인사합니다.
방학식에는 아예 가지 말자고 했던 게 진심이었던 걸까요.
태연스럽게도 말하네요.


권우찬은 골목 끝으로 걸어갑니다.
우선, 당신도 집으로 들어가도록 할까요.
유난히 피곤할 겁니다.
온 몸이 무거울 거예요.
한계까지 긴장하다가 막 풀어진 몸이었으니.
부풀어 오른 풍선의 바람이 빠져나가듯이 너덜거리기도 할 테고요.
당장 침대 위로 드러눕고 싶지 않나요.
가족이 정겨운 목소리로 저녁 식사를 권유하지만
지금 더 급한 건 수면일 거예요.
김치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좋아 보이지만,
어차피 내일도 먹을 수 있으니
2층에 있는 당신의 방으로 올라갑시다.
계단을 올라가면 화장실과 당신의 방이 있는 짧은 복도가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방 안이네요.
침대와 책장을 비롯한 가구들
일상에서 비롯되는 평온함이 있습니다.
그래요,
이제야 일상으로 되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똑같이 학교로 향했을 뿐인데도.
하교를 하였을 뿐인데도.
아마도 책가방을 두고 왔다는 이유만은 아닐 거예요.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주인공이 권우찬의 손에 죽어버렸어요.
혹시나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옥상에서 떨어졌으니 크게 다쳤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이런 생각을 말한다고 해서 누가 이해할까요.
오히려 미쳤냐는 소리만 들을 게 뻔합니다.
아, 졸음이 밀려듭니다.
이대로 두 눈을 감고서 잠드는 건 어때요.
굳이 참지 않아도 좋아요.
몹시 피곤했잖아요.
.
.
두 눈꺼풀을 내리깔았을 겁니다.
시선과 감정으로 인해 불규칙하던 호흡은
서서히 규칙을 되찾아갔을 거예요.
이만하면 숙면을 하고 있는 겁니다.
손발이 움직이지도 않고.
온 몸을 푹신한 매트리스와 이불 위에 맡겨두고 있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것이 보였을 겁니다.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몽상을 헤집어 내볼까요
당신은 이 모든 게 꿈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두 눈을 뜨고 나면 분명 까마득할 테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걸 보지 않을 수 있나요?
구원준, 관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7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아, 오늘 하루를 온통 너로 채웠는데.
꿈마저도 존재하는군요.
권우찬의 모습이 보입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깨 위로 새하얀 꽃잎이 떨어지는군요.
때마침 바람이 불자 비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그것이 몹시 어여쁘다는 사실과,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무척 어울렸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때마침 권우찬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듯 뒤돌아봅니다.

더없이 기쁜 얼굴로 말하는군요.
저 말은 누구에게 전하는 걸까요.
고개를 돌리면 아마 그 사람이 있을 겁니다.
꿈이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면요.
보통 아침마다 저 말은 당신의 차지가 되었고,
권우찬이 언제나 즐거히 말해주었는데.
어째서인지 당신의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구원준, 지능 판정.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53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56 |
| 판정결과: | 실패 |
떠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스스로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에요.
굳이 꿈 속에서 골치를 앓을 일이 있나요.
하지만, 이 순간으로 인해 오히려
당신의 처지를 실감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엑스트라다운 태도를 보이고 있잖아요, 구원준.
아, 낯설고도 낯설지 않은 표정입니다.
대상이 다르지 않았다면 가장 익숙한 얼굴이었을 거예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권우찬이 저렇게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학교의 어느 사람보다 가장 가깝고,
가장 잘 알 수 밖에 없는 사이니까요.
우리는.
.
.
Chapter 2. 내가 모르는 너.
창문 너머로 빛이 스며듭니다.
그러고 보면 하도 피곤해서 교복조차 갈아입지 않았죠.
커튼을 쳐두었을 리가 없습니다.
이른 아침의 봄볕이 그대로 얼굴 위로 쏟아집니다.
아직 한기가 남아있는 계절이긴 하지만
대놓고 손전등으로 쏘는듯한 느낌을 버틸 수 있을 리가요.
해가 중천에 떴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니
슬슬 두 눈을 떠보는 건 어때요?
당신은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립니다.

이상하군요.
꿈에 아직도 잠겨있는 건가.
그러고 보면 어젯밤의 꿈에도 권우찬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자, 다시금 두 눈을 감았다가 떠봅시다, 구원준.

아무래도 착각이 아닙니다.
권우찬은 당신의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와서 앉아있어요.


아닌데... (볼 꼬집어봄) 아;

하... 정말, 형이 날 너무 좋아해서 곤란하다. (실실 웃는중)

꿈에서도 보고 일어나자마자 또 보니까 구려서 그런다, 왜.

정말? 꿈에서 뭐했는데? (얼굴 바짝 들이댐)

(눈 데굴...) 꿈에서 니가 내가 존나 싫다 그러더라. (구라)

아니면 혹시 형이 내 마음을 신경쓰고 있었다던가- (간지럽히면서 장난질)

으하학... 아니 (몸 한바퀴 굴려 빠져나오곤) 어제 마지막으로 본 게 너여서 그냥, 나온 거겠지.

이번에는 기왕이면 좋은 내용으로 꿀 수 있게 해줘야지.

꾸긴 꿨는데... 제대로 본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중얼...)

그러니까 얼른 나가자, 가서 놀기로 했잖아. 형.

...나 어제 옷도 안 갈아입고 잤는데 이 상태로 나가? (...) 어디 가고 싶은데.

아, 그것도 그렇네. 어서 옷 갈아입어. 그리고 갈 곳은 내가 정해뒀으니까 걱정 마. (가만히 앉아있다.)

.......계속 보고 있게? (가만히 앉아있는 너 빤히...) 에이 모르겠다(;) (옷 훌렁훌렁 벗어버리고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위험한 사람이네... (시선 한 번도 안 떼고 빠아아안히)

그래서 어디 가고 싶은데.

(눈 질끈) 영화관, 영화관 가자고 했잖아 어제.

아 영화관. 요즘 뭐 재밌는 거 하던가? (양말까지 야무지게 주섬주섬 챙겨 신기) 가자 그럼.

글쎄, 미리 찾아보진 않았는데. 가면 뭔가 있지 않으려나? (문 쪽으로 발걸음 옮기고선) 자, 나가자.

이거... 노잼 영화만 보고 오는 거 아닌가몰라. (그럼 니 얼굴이나 구경해야지) 그래그래 가자.

그 전에, 옷 먼저 입고. (손가락으로 가슴팍 꾸욱)

옷은 이미 입었거든? (단추까지 끝까지 채워버리곤) 됐냐?

아, 다 입었어? (아쉽)
자자, 그럼 빨리 나가자. (문 쪽으로 네 등 떠민다.)

뭘 아쉬워하는 거야........? (황당;) 어어 밀지마 (떠밀려 문밖까지 앞서 나간다.)

자자, 어쨌든 가자-
문을 열고 나서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침샘을 자극하는 김치찌개 냄새와
시끌벅적한 가족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옵니다.복도에 걸린 액자에는
당신의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고
진열장에는 어릴 적부터 키워오던 선생님이라는 꿈을 발표하기 위해 그린
어린 시절의 낙서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습니다.
1층에 도착하면 거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아무리 친구끼리 사이가 좋아도 밥은 먹고 나가라고 하세요.
하긴, 그러고 보면 배가 고픕니다.
저녁 식사부터 쫄쫄 굶었으니까요.
이른 시간부터 온 우찬이는 식사를 했을까요?





우찬이는 민망한지 도망치듯 거실로 걸음을 옮깁니다.
꽤나 자주 왔던 탓인지 제 집인 마냥 자연스럽네요.
당신의 부모님께서도 어서 오라며 손짓을 합니다.
이미 동생들도 모두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거실로 가 자리에 앉으면
방금 막 끓인 따끈한 김치찌개가 놓여져 있습니다.
다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모습이
그야말로 정겨운 가족의 식사 자리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군요, 구원준.
자리에 섞여 함께 밥을 먹는 권우찬의 낯을 살피면
만족감이 어려 기뻐 보이는 낯입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즐거운 식사를 마치면,
이젠 외출을 할 시간이네요.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며 밖을 나서봅시다.


봄바람이 한 줄기 둥글게 똬리를 틀듯 불어오네요.
발목을 둥글게 감아옵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손을 잡아오는 또 다른 손을
인지하지 못했을 거예요.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함께 가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까지 나쁘게 들리지는 않잖아요.
물론 이럴 상황이 아니라는 자각은 있을 겁니다.
피해자를 염려해야만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염려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권우찬에게 무방비해지는지.
당신은 도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을 거예요.
구원준, 지능 판정.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가 웃었습니다.
부드럽게 당신의 손을 끌며 웃었습니다.
저 낯을 쳐다보고 있으면
벼락같은 깨달음이 치밀고 말아요.
네가,
날 해치는 상황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주인공마저 태연히 난간에서 밀어버리는 너인데도.
권우찬에게 당신은 그저 같은 반의 친구에 불과한데도.
◼◼◼ 상승+7
거리를 한참 걷노라면
우찬이가 검지로 한 쪽을 가리킵니다.
언제부터 저런 건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 영화관이 보입니다.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팝콘을 파는 매대와
영화표를 살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네요.

액션 영화랑, 로맨스. 그리고 SF영화 정도인가?
어떤 게 보고싶어?


(로맨스 영화 꾸욱)



너 로맨스 영화가 취향이었던가?



아, 그렇지. 팝콘도 하나 사먹으면서 봐야하지 않겠어?

...팝콘 취향은 뭔데? 영화 취향도 들은 김에.

어떤 거 좋아해?

니 취향이 궁금했던 거였는데, 그냥.

내가 사올테니까, 저기 앉아있어. 알았지?

(얌전히 가리킨 곳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다;)
간소하게 꾸며진 테이블 앞 의자에 앉습니다.
주변에는 인테리어 용인지 작은 책장이 있네요.
그래봤자 많지는 않지만
기다리기에 심심하기도 하니 몇 권 살펴볼까요?
시간을 때우기에는 적격입니다.
책장을 살피다 보면 눈에 띄는 제목이 몇 개 있습니다.
구원준, 자료 조사 판정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45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뫼비우스와 영원의 상관 관계], [사랑에 관하여], [장◼◼ ◼◼의 임◼◼] 이라.
어떤 것부터 읽는 게 좋을까요?

...낭만적이네. 이런 건 낯간지러운데. 왜 이런 게 취향이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더니 내려놓는다.)
[(뫼비우스와 영원의 상관 관계] 집어들기)
(위상기하... 뭐라고? 이게 뭔소린데.) (죄없는 글자만 노려봄.......)
([장◼◼ ◼◼의 임◼◼] 집어들기) 제목 뭐라 써있는 거 야 이게
(........뭐라는 거야?) (괜히 읽어보려고 하다가 눈깔만 빠질 것 같다. 눈 부비적...)
이상하지 않나요.
유독 이 책만 이상합니다.
페이지를 읽으려고 해도 글짜가 깨져 있어요.
책을 덮었다가 펼치고
눈살을 괜히 찡그려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아무리 보아도 데이터 파일이 깨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이 세상이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의 허탈감이 있었을 지도 모르죠.
그때 콜라와 팝콘을 품에 안은 채로 우찬이가 다가옵니다.










그런 거면 사랑인가봐~

형이 사랑이 뭔지 알려주면 안돼? 우정이든, 뭐든.

...내가? 내가 그런 걸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던가. 선생님을 잘못 고른 것 같은데요 학생.

왜, 형은 사랑받는 사람이잖아. 부모님에게서도, 동생들에게서도... 어쩌면 정확하게 형용할 순 없지만 나도 형을 어떠한 형태로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선생님은 잘 고른 것 같은데?

사랑 받아본 적 있는 놈이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도 잘 안다고는 하는데... 난 그런 거 잘 못하는 편이거든. 같이 배우는 입장이 될 것 같은데. 이런 건 별론가? 누구 하나한테 배우는 거 말고, 서로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네 뺨이 닿아오는 손이 왠지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아 심장께가 간질거린다. 어쩐지 들뜨는 탓에 기분이 이상해지는 듯 싶다.) 이런, 아깝네. 형의 첫 번째 제자가 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같이 알아가는 관계가 더 좋으려나. 살다-를 합친다고 했었지. 살아간다는 건, 배운다는 거니까. 더 사랑에 가까워질 지도 모르겠네. 나름 마음에 들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기댄 뺨이었으나,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느릿하게 얼굴 떼어내곤 괜히 테이블에 올려둔 팝콘이나 두어개 집어먹는다.) 그렇게 얘기하니까, 진짜 사... 사랑한다는 것 같고 그렇게 들리잖아. (너에게 건네줬던 책 빼앗듯 가져가곤 다시 책장에 꽂아넣는다.) 영화시간 아직 안 됐나? 슬슬 시작할 때 됐을 것 같은데. (낯간지러운 말에는 면역이 없다. 괜히 말을 돌리려하는 것이 너무 티가 났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이런 말을 듣고 있는 것이 더 적응이 되질 않는다.)

(네 반응에 민망함이 옮겨붙는 듯 잘만 말하던 입이 어버버거리며 제 구실을 못한다. 급히 손 떼어내곤 내릴 생각 못하고 허공에 어색하게 들어올린 채다.) 아, 아니. 왜 그렇게 말해? 형이 먼저 나한테 사랑인가보다, 해놓고선... (헛기침 하며 눈 이리저리 굴리더니 몸 살짝 일으켜 네 뒤쪽에 있는 책꽂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 그러게.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지... 하하, 다른 책이나 더 살펴볼까? (그리 말하면서 네가 꽂아두었던 [장◼◼ ◼◼의 임◼◼ ]라는 다급히 책을 펼쳐든다. 막상 정신 못 차리느라 내용은 보지도 않고 있지만...)

(같이 어버버거리며 어색하게 입만 벙긋거리더니 다시 입 다물어버린다. ...괜히 그런 이야기를 꺼내선.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렸겠지.) 아니... 내가 말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나는 그냥... 우정도 사랑이라면야 너를 많이 사... 사랑... (이내 다시 입 꾹 다문다. 무슨 말을 해봐도 수습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사랑'을 언급한 거랑은 약간 다르잖아... 몰라 아무튼 너 때문이야. (같이 헛기침이나 하더니만 네가 책장에서 꺼낸 책을 유심히 바라본다. 저 책이 쟤한테는 읽히려나. 그래도, 제대로 된 게임 속 인물이면 뭐가 다른가?) 평소엔 책도 잘 안 읽는 놈이... ......그 책 무슨 내용이야?

(사랑, 사랑. 머리 속에서 한 단어가 메아리처럼 울려 빠져나갈 생각을 않는다. 사랑이 무엇이길래 입 안에서 굴리는 것 만으로도 혼을 쏙 빼놓는지. 알 수 없는 것이 기분이 들뜨는 것 같으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나 때문이라니... 이렇게 책임 전가하기 있어? 치사해. 형 탓도 있어. 이런 것도 같이 책임져야지. 그러니까, 사랑... 아, 모르겠다. (줄줄이 뱉어놓고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리가 있나. 고개 쳐들고선 잠시 천장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응? 이거 형이 읽고 있던 것 같길래 펼쳐본 건데, 안 읽었어? (고개 기울이더니 네게 책 내밀곤) 형이 한 번 읽어볼래?

(알 수 없는 감정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저 부끄러움인가, 아니면 그 단계를 앞서버린 또다른 무언가인가.) 여기에 내 탓이 대체 어딨어? 낯간지러운 말 해댄 게 누군데. (이런 분위기로 봐야하는 게 하필 로맨스 영화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 선정을 잘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사랑.... ...아 그 얘기 이제 그만해. 자꾸 막... 기분이 이상해지잖아. (제게 책 내미는 것 보고는 고개 절레절레 흔든다. 보여줘도 안 읽힌다고 말해버릴 수도 없고.) 아, 읽으려다가 너 오길래 덮었지. 됐어, 내가 책 읽어봤자 그냥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로다... 하고나 있을 텐데. 니가 읽어주고 내용 요약해주면 안 되나. 수능 인강처럼... 딱 세줄 요약. (아 수능 인강은 그렇게 요약 안 해주던가? 안 들어봐서 모르겠네.)
(눈 데구르 굴리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한 부탁이었겠다, 싶었는지 책 건네받는다. 다시 읽는다고 뭐가 달라지려나.)
다시 한 번 페이지를 들여다 보면...
구원준, ◼◼◼ 판정

| 기준치: | 32/16/6 |
| 굴림: | 76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32/16/6 |
| 굴림: | 84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32/16/6 |
| 굴림: | 1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분명 일그러진 글자였을 텐데,
단단해진 형체는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종이 위에서 자리를 잡습니다.부드러운 표지의 동화책과 같지만 내용은 건조합니다.
이런 걸 읽고서 아이들이 얻을 교훈이 있을까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어쩌면 이것도 주인공이 사라진 세상이라 그런 걸까요?
◼◼◼ 상승+1

누가 낯간지러운 말을 했다고 그래? 난 그냥, 가르쳐달라고 한 것 뿐인데. ...괜히 형 반응 때문에 나도 민망스럽잖아.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긁적인다. 네가 책을 보는 동안에 콜라 들이키며 들뜨는 기분을 진정시킨다.) 어때, 책은 다 읽었어? (다리 달달 떨더니 말 돌리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아오... 한 번 분위기 이상해지니까 되게... 부끄럽네. (손으로 두어번 부채질이나 해댄다. 손목만 아프고 시원해지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어, 어어. 다 읽었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보이는 책 내용에 자신이 이상했던 것인지, 착각이 든다. 책 다시 책장에 꽂아넣고는.) 시간 다 됐나?

형도 낯간지러운 말 했으면서... 내 탓만 하고. (네 반응을 보니 괜히 또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동시에 어쩐지 더 보고싶은 기분. 꾸욱 참아내고선 시간을 확인한다. 이젠 일어날 시간이다.) 응, 어서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뻗어 네게로 향한다. 잡고 일어나라는 듯이.)

항상 내 탓은 없으니까 당연하지. 난 잘못한 게 없거든~ (계속 부끄러운 티를 내고 있는 것이 더 분위기를 서먹하게 만드는 듯 하여 괜히 농담투로 말 꺼낸다.) 너랑 있으면 시간 되게 빨리 간다니까... (제게 뻗은 네 손을 잠시 바라만 본다. 이 손을 잡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가자.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이내 네 손 조심스레 잡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말, 형이 얄밉게 느껴진 건 처음이네. (따라 장난스레 콧방귀 뀌어놓고선 민망했던 기색 날린 채 평소처럼 웃어보인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 어쩌면 우리 조금은 통하려나? 그래, 가자. (손 맞잡더니 살짝 끌어당겨 천천히 발걸음 옮긴다.)
둘은 계단을 올라 상영실로 향합니다.
늦지 않게 자리에 앉아야 겠어요.
나란히 자리에 착석을 하면,
때마침 광고를 마치고
영화의 막이 오릅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벚꽃잎이 휘날리는 등굣길로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합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청춘 멜로 영화네요.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세상의 모든 빛을 받은 듯,
눈부시게 반짝이는...
완벽한 두 청춘.
두 사람이 함께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이겨내는 사랑.
그야말로 봄.
봄이었습니다.
작위적이며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
어느새 이야기는 클라이 막스에 다다라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 내가 네 앞에서 좋아하는 티를 냈던가? "
" 아니, 너는 내 앞에서 티낸 적 없어. "
" 오히려 항상 내가 볼 수 없을 때 좋아하는 것 같았지. "
" 그래서 궁금했던 거야. "
" 네가 내 앞에서 좋아하는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
가슴 한 켠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눈치채지 못한 사이,
어느샌가 당신의 손등 위로 따스한 손이 겹쳐지네요.
손가락 사이를 비집어 깍지를 낍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면,
행복하다는 듯 당신을 바라보는 우찬이가 보입니다.


















(중간중간에 눈 힐끗이면서 쿡쿡 웃기나 했던가.)
정신 팔린 새 영화가 막을 내리고
둘은 영화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느덧 오후가 다 지나버렸네요.
벌써 저녁이 다 되었습니다.
아직 날이 차서 그런지
해가 빨리 떨어지네요.
쌀랑한 바람이 살결을 스칩니다.
그것을 아쉽다는 듯 바라보던 권우찬이 당신에게 말합니다.



집까지 데려다줄게, 어때?

나야 거절 안 하지, 가자.

좋아, 내일은 뭘 할까? (앞서나가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내일도 너 하고 싶은 거? 뭐 더 해보고 싶었던 거 없어? (뒤따라가는 중에도 네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나온다.)

(뒤돌아 마주본 채로 고민하는 듯 낮게 침음하더니) 음, 내일은 형네 집에서 노는 거 어때?

(잡고 있던 손 당겨 가까이 붙더니 슬쩍 미소 짓는다.) 뭘 그렇게 빨리 가고 그래. 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며. (우리 집에서? 잠시 고민하고는 고개 끄덕) 그래, 뭐. 차라리 집으로 오는 게 편하긴 하겠네.

(옆에서 나란히 발걸음 맞춰 걸으며) 응, 형 사실 실내에서 있는 거 더 좋아하잖아, 아니야? (큭큭대며 어깨 툭 맞댄다.)

다른 걸 내가 해본 적이 없어서 비교를 해볼 수가 없네. (나란히 걷던 발걸음 속도가 느리다. 더 같이 있고 싶다는 게 티가 날까, 속도를 재촉해보기도 하지만...) 다 들켰네... 그렇게 티 났나?

그런가, 그럼 난 이 감정에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을래. 내가 하고픈 대로 하고 싶으니까. (네 발걸음 속도 따라 걷는다. 어느새 영화관이 보이지 않고, 길가로 들어선다.) 우리가 언제부터 봐온 사이인데 모르겠어. 안 그래?

이미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있잖아, 아니야? (잠시... 어제 일어났던 일이 떠오른다. 너무 과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어서 문제긴 하지.) 그래도, 이런 것까지 니 입으로 들으니까 좀 쪽팔려서.

쪽팔리기는, 이것보다 더 아는게 많은데... 말하면 형 놀라겠어. (장난스레 웃음지으며 맞잡은 손 흔들거린다. 그렇게 걷다보면 곧 초롱 지붕이 보이던가.) ...있지, 내가 계속 멋대로 굴어도 옆에 있어줄 거야?

...더 들으면 더 쪽팔릴 것 같으니까 거기까지만 말해. (어느새 보이는 제 집 지붕. 아쉬운 마음에 네 얼굴 힐끔거리며 보던 것도 잠시... 이어들리는 네 말은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뭘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물어봐? 당연하지.

형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푸하핫, 크게 웃음 터뜨리더니 고개 끄덕인다. 헤어지기 아쉽다는 생각에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춰서곤, 발끝을 네게로 돌린다.)
방금 한 말 정말이지? 이제 취소 못 해. (네 말이 끝나자마자 멱살 움켜쥐더니 쭉 끌어당겨 네 입술에 입맞추었다가 떨어진다.)

(뭘 그렇게까지 웃고 그러지? 표정 미세하게 구긴채 시선 네게 고정시키더니만, 집 앞에서 함께 발걸음을 멈춘다.) 취소는 무슨... (순식간이었다. 입술에 말캉한 감촉이 닿았다 사라진 것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눈만 크게 뜨고 있다.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머리에서 떠오르는 말 또한 없었으니 입을 열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한 뼘 틈을 두고서 마주본 채로 가만히 시선을 맞춘다. 맞닿았던 감촉이 여전히 잔상이라도 남은 듯 간질인다. 멱살 쥐었던 손이 스르르 풀리고, 한 발자국 물러서선 제 입술을 괜히 매만져본다.) ...내일 또 보자, 형. 내가 와서 맛있는 요리도 해줄테니까 기다려. 알았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건 아마 노을 탓이다. 방긋 웃음지은 채 네게 살랑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기뻐보인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나올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을지도.) 그래서 매일 감내하는 중이잖아. 불쌍하게 여겨서 좀 봐줄 생각 같은 건 없나?
(한 발자국 물러서 거리가 벌어졌음에도 시선은 네 입술을 향한다. 이상한 기분이다. 누군가와 입맞춤을 한다는 상상 속에서도 네가 상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제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느릿하게 내린다. 내일... 어떤 얼굴로 너를 마주봐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기... 기대되네. (아, 바보같이 말했다. 집에 가면 이불을 몇 번이고 차버릴 것 같은 한 마디. 그럼에도 진심이다. 영화관에서 사랑을 이야기할 때보다 부끄러운 이 기분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선은 착실하게, 또 꾸준하게 너의 입술을 향했다가 다시 시선을 맞춘다.) 기다릴게. 내일 봐.

(순간의 충동으로 인해 벌인 일이었으나, 후회된다는 생각은 커녕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가까워진 거리와 닿아오는 숨결, 말랑한 감촉까지. 심장이 귓방망이를 때리는 소리 외에는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아 소란스럽다. 세상에 마치 둘만 있는 기분에 현실성이 없이 마치 붕 뜬 것만 같다. 제 입술을 향한 시선을 눈치채면, 다시 입맞추고픈 충동이 일지만 내일 당장 또 얼굴을 봐야하니 네 놀란 심정을 배려하기로 한다.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참는 건 할 수 있으니까.) 응, 좋은 밤 되길 바라. (기다리겠다는 말이 이리도 듣기 좋은 말이었던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돌려 네게서 멀어진다. 점점 작아져가는 모습에 힘껏 손을 흔들어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너를 돌아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계속.)

너도 조심히 들어가고. (고개 끄덕이며 손 흔들어준다. 네가 한 번씩 돌아볼 때에도 계속해서 제 모습이 보이도록. 점점 작아져가는 뒷모습에도, 네 모습이 보이질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손을 흔든다.) ...내일 또 봐. (작게 중얼거린다. 듣는 이는 아무도 없음에도. 하루가 너무나도 짧다. 가만히... 대문 앞에 서서 네가 보이지 않는 거리를 바라만 보더니 이내 집 안으로 들어간다.)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그저 같은 반의 친구와 조용히 지냈을 뿐이에요.
책이 조금은 이상했고,
친구는 제정신으로 저지를 수 없는 짓을 벌였으며,
비록 그 친구와 입맞춤을 해버렸지만.
겉으로만 본다면 이보다 더 평화로운 날이 있을까요.
담장 너머에서 돋아난 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집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내내 그 새하얀 것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봄.
그야말로 봄이었습니다.
봄의 한복판을 걷고 있습니다.
사방이 적막한 것은
다들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라 그런 걸까요.
아니면 중요한 것이 사라져버린 세상이라 그런 걸까요?
오늘도 저녁 식사는 건너 뛰도록 합니다.
입맛이 없네요.
어쩌면 팝콘을 먹지 않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침대 위로 쓰러지듯 느러누우니
노곤하기만 합니다.
순식간에 잠에 빠져든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베개 위로 머리를 파묻고서 눈을 감아봅시다.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방학식입니다.
푹 자버려도 상관은 없을 테니까요......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쩌면 새벽이 다 지나가 버렸을지도 몰라요.
꿈결을 헤매며 뒤척이고 있을 무렵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구원준, 듣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7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소리.
그것을 소리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명백한 울음이지 않습니까.
서러움이 뚝뚝 묻어나서
음절 위에 덧발린 것처럼 들립니다.
방향을 따라 걸어볼까요.
어차피 이것은 꿈이지 않습니까.
저 소리가 서글프게 들려오더라도
굳이 공감할 필요는 없어요.
꿈이니까요.
걸음을 옮깁니다.
몸은 침대 위에 누워있을 테지만
정신만큼은 발길을 따라 옮겨갑니다.
저 너머에서 장면이 보이네요.
봄입니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떨어지는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것은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떨어집니다.
팔랑, 팔랑.
끝없이......
구원준, 듣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저 너머에 누군가 있습니다.
나란히 등교하던 두 사람의 기로를 가로막았어요.
무작정 외치는 걸까요.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립니다.
???: 아◼◼아.
분명 어제는 겨◼◼었고,
우리는 끝까지 ◼◼하겠다고 했잖아.
네가 내게 말◼◼아.
변하지 않을 ◼◼고
네가 고개를 끄◼◼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붙잡힌 채 말을 들어주던 대상도
마저 갈 길을 떠납니다.
모든 학생들이 교실로 향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옮깁니다.
인파가 많아 모든 광경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어요.
◼◼◼ 상승+7
아, 이건 분명 이상한 꿈입니다.
어떤 시선도 받지 못하는 우찬이가
등굣길 한복판에서 주저앉는 모습이라니.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이잖아요.
...
분명 이런 걸 보고 싶어서 눈을 감은 게 아니었을 텐데.
.
.
Chapter 3. 꿈은 끝나지 않지만.
간밤에 꾸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로맨스의 시작.
사방으로 분홍색이 날아다닐 것 같은 세상.
벚꽃잎이 떠돌아다니고
올해 봄에 저런 적이 있었나요.
없었을 겁니다.
분명 없었을 거예요.
권우찬은 그때도 등교를 하다가
말을 걸어오고는 했습니다.
좋은 아침.
두 사람은 교실까지 나란히 걸어갔지요.
타박타박,
나란히 걷던 길을 잊을 리 없습니다.
그건, 겨우 며칠 전이었으니까요.
심지어 권우찬은 주인공을 죽여버렸습니다.어째서 일어날 수 없는 일 따위를 꾸었을까요.
괜히 기분만 찝찝해집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나요?
구원준, 듣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초인종 소리가 울립니다.
누군가 방문한 걸까요.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걸 보면
부모님은 아무래도 자리를 비우신 것 같습니다.
잠시 외출을 하신 모양이군요.
당신이 나가는 수 밖에 없겠어요.

현관의 문고리를 잡아 돌립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어요.
그게 누구인지 파악할 시간보다옷차림에 더 먼저 시선이 갔을 겁니다.
애초에 저런 옷을 입는 건 경찰 외로는 없잖아요.
경찰이 왜 여기에 온 거죠?
경찰: 안녕하십니까,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조사 차 왔는데,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대화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경찰: 방학인지라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피해자와 같은 학교인 학생들의 집을 방문하는 중입니다.
질문을 몇 개 드리고 싶은데, 아시는 대로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경찰: 아뇨, 아주 간단한 질문만 드릴 예정이라서요. (손 설레설레 흔든다.)
혹시, 피해자는 평소 어떤 학생이었는지 아십니까?

경찰: 흠,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사건 당일 현장을 목격하셨나요? 사건 상황 진술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경찰: 아... (피어싱으로 시선이 향하고선 어쩐지 시선이 바뀐다. 애매한 표정.)
그럼 마지막으로 형식상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어제는 혹시 뭘 하셨죠?

어제요? 영화 봤는데. 이런 것도 중요한 건가요?
질문과 대답이 오갈 무렵,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목소리가 울립니다.

고개를 돌려보면 그것에는 권우찬이 있습니다.
경찰은 똑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아무 흐트러짐도 없이 대답하네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기엔 어폐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큰 모순이 있지요.
어떻게 하겠어요, 구원준.
당신만이 알고 있는 오류를 발언할까요.
혹은 동조하겠어요.
침묵을 선택해도 결국 동조나 다름없을 겁니다.
이 세상에는 방조죄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잖아요.

경찰: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경찰은 더 알아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우찬이는 아주 조용히 당신의 손을 잡고 있어요.

들어가도 괜찮지?

들어와.

(방긋 웃더니 네 손을 꼬옥 쥐고선 집 안으로 들어선다.)
그래도 작정하고 놀러 왔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또 새로운 걸?

일어나니까 먼저 보인게 너라서 얼마나 놀랐었는 줄 알아?

일부러 형 놀라라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씨익)




혹시 지금 먹고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게.

먹고 싶은 건 생각이 안 나는데, 제일 자신 있는 메뉴는 어때. 너도 솜씨 뽐내서 좋고, 나도 맛있는 거 먹어서 좋고.

제일 어려운 메뉴가 나왔네. 아무거나라... 흐음. 고민이 되는 걸. 난 아무 메뉴나 자신 있는데 말이야. 형이 좋아하는 게 어떤 거려나. (고민하는 듯 끙, 앓는 소리를 낸다. 턱 괴고선 제 뺨을 톡톡)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네 옆으로 가 어깨 위에 턱을 올린다.) 니가 해주는 거면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적당히 쉽고, 뽐내게도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럼 나 계란말이 해주라. 집에 계란 정도는 항상 있으니까~

(고개 돌려 쳐다보고선 눈 깜빡이더니) 계란 말이? 그거 좋네. 그럼, 하는 김에 오므라이스도 해줘야겠다. (장난스레 네 머리에 고개 툭 기대고선 웃는다.) 오늘은 계란 파티를 하는 거지. 질리도록 먹게 해줄게.

계란말이에 오므라이스까지... 완전 계란 파티네. (그래도 맛있겠다~ 밝은 목소리로 한 마디 더 덧붙이고는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버린다.) 뭐해 빨리와, 난 뒤에서 구경 하면서 응원이라도 해줄게. 부엌에서는 별로 도움 안 될테니까.

(푸핫, 작게 웃더니 네 뒤를 따라 부엌에 들어선다.) 응원해주면 무척이나 힘이 나겠는데, 좋아. 내가 요리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말동무라도 해줘. 음, 혹시 앞치마는 어디 있어? (두리번)

아, 앞치마. 우리 엄마는 잘 안 써서 밖에 있을 텐데... 기다려봐. (부엌 바깥에 걸려있는 앞치마 가지고 다시 들어온다.) 재료도 뭐 필요한지만 알려주면 어딨는지 알려줄게. 오늘의 요리사 말 잘 듣고 밥 얻어먹어야지~

(가만히 부엌에서 기다리며 조리도구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으음, 후라이팬이랑 기름. 아, 냉장고 한 번 살펴봐도 될까? (앞치마 받아들고선 능숙하게 리본 묶더니 차려입는다.) 어때, 이제 요리를 한 번 시작해 볼까?

냉장고? 상관 없어. 저번에 장보고 온지 얼마 안된 것 같던데, 재료는 웬만한 거 다 있을걸? 계란말이랑, 오므라이스 하기엔 부족할 게 없을 것 같은데... 난 모르겠다. 전문가가 직접 보는 게 낫겠지. (부엌에서 장애물 없이 다닐 수 있게 잠시 식탁 의자에 앉아서 너 빠안히 바라본다. 앞치마까지 차려입고 서있자니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예쁘네. ...아니 이게 아닌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어 안을 살펴본다. 한 눈에 재료를 이것저것 꺼내더니 어느샌가 요리할 준비를 금세 다 꺼낸 듯 하다. 네 시선을 느꼈는지 칼 꺼내들고선 손끝으로 날을 훑더니 으스대며 어깨 으쓱인다,) 잘 봐워, 내가 커서 유명한 셰프가 되면 돈 주고도 못 볼걸? 근데, 방금 뭐라고 했어?

(식탁에 몸을 기대어 키득거리며 웃는다. 제 앞에서 으스대는 모습이 평소다워서, 긴장이 풀리는 것만 같다. 집에 경찰이 다녀간 것이라거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머리에서 지워내버릴 수 있을만한... 일상. 이런 나날만이 반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못들어서 다행이다... (작게 중얼거린다. 네가 들었으면 창피해서 고개도 들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아냐 아무것도. 유명한 셰프로 이름 널리 알린다고 해도, 내 앞에선 또 해줘야지. 이름 값한다고 나 버리고 그러면 안 된다?

혼자서만 중얼거리면 내가 못 듣는다고. 형 입에 마이크를 달아두고 싶네. (툴툴대면서도 마저 요리를 이어간다. 네게로 등 돌린 채로 불에 후라이팬을 달궈 계란 말이를 만들면서도,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간질간질한 기분. 슬쩍 뒤돌아 바라본 네 얼굴에 홀린 탓에 계란을 태워먹을 뻔 했다는 건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어떠한 가능성의 미래를 상상하게 되어서...)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네. 형, 내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아니다? 대신에, 나중에 내 요리 먹을 때마다 소원 하나씩 들어주기 어때. 아주 사소한 걸로 말이야.

별 말도 아니었거든? 툴툴거리지 마. (툴툴거리면서도 요리에는 집중하는 모습이 꽤나 웃기다. 괜히 웃음소리를 내었다가는 또 네가 왜 웃느냐며 짜증이라도 낼 것 같아 아랫입술을 꾹 깨문채 웃음을 참는다.) 매정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 잘 알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그 작은 가능성까지도 차단 시켜버리려고 이러잖아. (소원? 애도 아니고... 그 때까지도 이 약속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래.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 안에만 있다면야. 사소한 거라면 지금부터도 들어줄 수 있는데.

흥, 형을 위해서 요리해주고 있는 사람을 위해 응원해준다고 했으면서. 잔소리 할 거야? (맛있는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고, 어느샌가 두 접시 위에는 오므라이스가 완성되어 차려져 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럼 말로만 구두계약을 맺지 말고, 계약서라도 쓰는 건 어때? 마침 잘 됐네, 형이 방금 소원 들어주겠다고 한 것도 적어둬야겠다. (장난스레 대꾸하며 접시를 네 앞에 가져다 놓는다. 방금 막 만들어진 오므라이스가 노릇노릇하다.) 자, 완성이야. 어때, 맛있어 보이지? 내가 위에 그림도 그려뒀으니까 한 번 봐. (자랑스럽게 손을 뻗어 보여준 네 몫의 오므라이스 위에는... 햄스터가 그려져 있다. 제 것에는 아직 케찹을 뿌리지 않았는지 말끔하다.)

속으로는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게... 전달이 안 됐나보네~ 텔레파시 실패했나?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꾸하더니 어느새 부엌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킁킁, 소리를 낸다.) 천재 요리사네 아주~ 벌써 다 했어? (계약서 이야기에 입꼬리 올리더니) 마~음대로 하세요. 내가 설마 한 입으로 두 말할까봐? 내가 아무리 그래도 구라는 안 치거든. (제 앞에 놓여진 오므라이스를 보고 잠시 감탄한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근데 그려진 그림이... 햄스터?) 뭘 그려놓은 거야, 설마 햄스터? 으하하... 보통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걸 그려놓지 않나? (네 몫의 오므라이스는 아직 말끔한 것을 살펴보더니만 케챱 가지고 와서 열심히 토끼 그림을 그려준다.) 자~ 완성.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건데, 형은 햄스터를 닮았거든. 보들보들하고, 새하얀 햄스터. 내가 특별히 하트까지 그려줬어. (손 모양으로 네모를 만들어 네 모습을 담더니만, 밑으로 내려선 이어 오므라이스 위에 그려진 햄스터를 가리킨다.)(토끼그림 빠아안히 보다가 웃음 터뜨리곤) 뭐야, 이 엄청나게 귀여운 토끼는? 아, 먹기 아까운데... 형, 맛있어지는 주문 외워주면 안돼? (카메라로 찍더니 고개 들어 눈 반짝) 이건 속으로 하지 말고, 텔레파시 보내다가 딴 사람한테 가면 나 억울해? (큭큭대며 웃더니) 나중에 요리해주면 소원 들어주겠다는 약속, 그럼 계약서는 안 쓸 테니까 꼭 지켜야 해. 시간이 지나도 나랑 했던 것들 잊어버리지 말고. 알았지?

.......뭔 소리야 이게? (황당...)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거든 그거. 햄스터는 이미지가 좀 작고... 소중한 뭔가 그런 게 있지 않나? (검지손가락으로 제가 그린 토끼 그림을 가리킨다.) 넌 토끼 닮았어. 그냥 하는 짓도, 생긴......... 아니다. 생긴 건 안 닮았어. (눈썹 찌푸리며 못들을 말이라도 들은 사람마냥 입술 작게 벌린다.) 맛있어지는 주문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런 게 취향인 건 알겠는데, 난 전혀 취향 아니거든. (이걸 왜 찍어가는 거야.) 딴 사람한테 가면 뭐... 네 몫의 응원 따로 다시 해주면 될 거 아니야. 뭐 그런 걸로 억울해하고 그러냐? (숟가락 들고 햄스터 그림 피해서 한 입 떠먹는다.) 절대 안 잊어버려. 진짜 못믿겠으면 진짜 계약서까지 써버리던지.

오, 내가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해줬네. 실제로는 아니지만, 뭔가 한 손에 쏙 들어올 것 같다고 해야하나. (감탄하다가 한 쪽 눈썹 들썩) 뭐야, 그럼 뭐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토끼를 닮았다고 생각하다니. 그럼 토끼가 초당 5대씩 때릴 수 있는 것도 잊지 않았겠지? (눈 깜빡이다가 시무룩) 아, 내가 형 맛있게 먹으라고 요리도 열심히 해줬는데... 주문, 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추우우우우욱) 왜냐면 고생한 건 난데, 뺏기기까지 하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안 그래? (어깨 으쓱이더니 입고리 말아올리곤) 나랑 했던 것들... 안 잊기로 약속한 걸로 알고 있을게.

(널 위아래로 훑는다.) 들으면 들을 수록 어이가 없어지는데 그냥... 그거 햄스터한테 실례야 인마. (뒷말에 킥킥대며 웃어댄다. 초당 다섯대를 때리겠다며 팔을 슈슉 움직이는 너를 상상해버렸다. 차마 제가 방금 무슨 상상을 하였는지 입밖으로 꺼내진 못하겠지만.) 아... 난 맞는 건 별로 취향이 아니라서 초당 다섯대는 딴 놈한테나 선사해주라. (...) (................) 진심으로 해달라고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냥 농담이잖아, 그치. (땀 뻘뻘뻘) 그럼 억울한 만큼 두 배로 더 해주면 될 거 아니야. 별로 억울하지도 않을 거면서 억울한 척은... (네 숟가락 뺏어 네 몫의 오므라이스를 한 입에 들어갈 만큼 퍼올려 들이민다.) 알겠으니까, 빨리 밥이나 먹어. 절대 안 잊어버릴 거니까 걱정 좀 그만하고.

햄스터한테 실례라니, 형은 나를 토끼로 비유해놓고선. 그렇게 따지면 토끼한테도 엄청나게 실례인 거 알아? (콧방귀를 뀌며 어깨 으쓱이고선 따라 웃음짓더니 주먹 쥐고선 툭툭 때리는 시늉 한다.) 에이, 내가 설마 형을 때릴까봐. 절대 안 그러지. (양 손으로 제 얼굴 감싸선 턱을 괴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여 장난스레 씨익 입고리 올린다.) 으음, 농담 반, 진담 반? 정말로 안 해줄 거야? (큭큭대며 웃더니) 척이라니, 정말 억울한 거 맞거든? 이런 섭섭한 소리를 하다니. (기다렸다는 듯 입 크게 벌려 오므라이스 받아먹더니) 먹을 걸로 입을 다물게 하다니,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 알았으니까, 형도 어서 먹어. (따라 오므라이스 숟가락에 퍼올리더니 네 입 앞에 가져다 댄다.)

나는 생긴 걸론 딱히 비유하진 않았는데, 하는 짓이 닮았잖아. 당근 들고 우쭈쭈~ 부르면 와볼래? (놀리는 듯한 투다. 식탁에 당근이라도 놓여있었다면 정말 당근을 달랑달랑 들며 놀려댔을 게 뻔하다.) 나도 그냥 맞고만 있어줄 생각은 없거든. 평화를 사랑해보자, 우리. (앞으로 몸 기울인만큼, 몸 뒤로 뺀다. 이미 다 삼켜버린 내용물이 아직도 입에 남아있는 척, 오물오물 씹어대는 시늉을 하더니) 너 먼저 하면 고민이라도 좀 해보고. 나 혼자 하는 건 좀 외롭잖아. (진짜 받아먹네.) 원래 애들은 먹을 때만 조용해지거든. 너도 좀 입에 뭐라도 넣어주면 조용해질까 싶어서. (작게 웃더니만 네가 퍼준 오므라이스 낼름 받아먹는다.)

혀엉, 그러다가 나한테 손가락 물릴지도 몰라? 중세 토끼 그림 본 적 없어? (눈 얇게 뜨고선 쳐다보며 부러 이 드러내고선 씨익 웃음짓는다. 주먹 쥐고 있던 손 펴더니 볼 살짝 꼬집) 이렇게 쉽게 당해놓고는. 그래도 햄스터 주먹은 벽도 부수니까, 여기서 항복! (손 가볍게 들어올렸다 내리곤 빤... 오물거리면서 먹는다.) 뭐어? 난 케찹 짠지 좀 오래돼서 효과가 없을텐데. 그리고 귀여운 사람이 해야 효과가 있단 말이야. (우물거리더니 꿀꺽 삼켜내곤 흥, 헛웃음을 짓는다.) 내가 어린 애인 줄 알고? 동생들이랑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나한테는 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할 걸? 더 배워오도록 해.

아우 살려주라~ 무슨 토끼 한 마디 했다고 어느 시대까지 내려가려고 그래. (농조) 얼씨구, 형 볼을 막 꼬집지. 이렇게 까불 때 주먹맛이라도 한 번 보여줬어야 했는데, 항복도 되게 빠르네. (빤히 바라보는 시선 느끼곤 눈썹 까딱거린다.) 그렇게 봐서 얼굴 뚫리겠어? 레이저까지 나오게 더 뚫어져라 봐봐. (오므라이스 몇 입 더 떠먹더니만 네 말에 혀라도 씹었는지 인상 팍 찡글인다.) 아씨.... 니가 헛소리나 하니까 그렇잖아. (마저 우물거리더니 꿀꺽) 혀 씹었네... (혀 메롱 내보인다.) 존나 빨개졌겠네. 보여? (키득키득) 그러게, 동생들이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몇 살 더 먹었다고 완전 애 취급은 싫어하네. 뭐 더 어떻게 특별한 방법으로 해줘야 하나...
어느덧 발치를 보니 그림자가 짙게 물들어있습니다.
발등 위로 까만 그림자가 늘어지는 걸 보고서 창문을 보면요.
어두컴컴한 밤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오늘따라 유독 귀가가 늦어지시고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지나갔어요.
마치 화살 끝에 매달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이런 시간에 우찬이를 혼자 내보내기도 마음에 걸리지 않습니까.
그걸 잘 알고 있기라도 할까요.
우찬이가 애교스럽게 말해옵니다.

불건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지
한 박자 늦게 말을 덧붙입니다.

이때 구원준, 지능 판정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무언가 의문이 떠오르는 것도 같았지만...
착각인 것 같습니다.



얌전히 있을게. (입고리 히죽)

...(눈썹까딱) 얌전히 있어야지. 쫓겨나기 싫으면...

(말 돌리면서 등 꾸우욱 밀기)

언제나 홀로 잠을 청하던 방이었는데
오늘은 한 사람이 아닌 둘이 되었습니다.
우찬이는 천연덕스럽게 소파 위를 차지하고서는 말했어요.

멋대로 남의 집을 차지하고,
뻔뻔스럽게 굴고.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했는데.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걸 보면
어쩌면 지금이 꿈인 건 아닐까요...
문득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만
발바닥 밑으로 바닥을 딛고 서 있는 감각을 되새겨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자, 이제 잠을 청하도록 합시다.
피로가 밀려들지 않나요.
온종일 우찬이에게 휘둘렸기도 하고.
기운도 많이 빠졌을 텐데.
금방이라도 베개 위로 뒷머리를 대고 싶을 거예요.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구원준.
침대 위에서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나요.
같은 방 안에서 들리는 숨소리에 잠을 설치기라도 했나요.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잠에 빠지고 말았을 겁니다.
눈꺼풀을 닫음으로써 새까만 배경을 보았을 거고,
꺼멓기만 한 시야 틈에서 서서히 빛이 돌아왔을 거예요.
두 눈을 뜬 게 아닙니다.
이게 바로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요.
듣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풍경이 들이닥칩니다.
이곳은 옥상입니다.
햇빛은 유독 따듯하고
하늘은 푸르디 푸르고
운동장에서는 축구를 하는 남학생들의 외침이 들리는 시간이었어요.
그 속에서 한 사람은 크게 언성을 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을 향해서 분노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을 향해서요.
구원준, 관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8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소리를 치는 건 권우찬입니다.
노성을 지르거나 이성을 잃어버리는 모습이라니
이런 걸 상상해본 적도 없을 텐데.
지난밤의 꿈에 이어서 보이는 것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두 손으로 옷깃을 틀어쥐고서 외치고 있어요.

그따위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내게 이러지는 말았어야지!
분노.
선연한 분노
하지만, 슬퍼 보입니다
몹시 슬퍼 보입니다
구원준,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아마 그 판단은 무척 정확했을 거예요.
◼◼◼ 상승+12
주인공은 멱살을 붙잡힌 채 그저 바라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노골적인 태도를 읽어낸 건 당신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권우찬은 멱살을 틀어쥔 손을 내던지듯 풀어버립니다.
벽면에 등이 부딪힌 주인공의 시선이 여유가 없을 거예요.
뒤로 물러나는 걸음을 옮깁니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리고 세 발짝.
난간 위로 올라선 몸
이윽고 바람이 불어옵니다.
뒤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 끝이 일렁입니다.
여름치고 긴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요.
완벽한 날씨입니다.
다만, 권우찬은 모든 것이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발음하네요.

아, 불길한 예감이 치밀어 오릅니다.
그 몸뚱어리가 뒤로 기울어지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균형이 무너지며 스스로 쥐었던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이요.
당신의 몸은 어디로 향했습니까.

난간 가장자리로 달려갑니다.
밑으로 손을 힘껏 뻗어봅니다.
노력해보지만 닿지 않습니다.
알고 있잖아요, 구원준.
이건 꿈입니다.
모든 괴로움은 의미가 없잖아요.
하지만,
하지만, 나는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겁니까.
어째서 세상에 선택받은 네가 이러고 있는 걸까요.
완벽한 사랑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스스로 저물어가려고 하는 건가요.
만일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두 팔을 들었다 한들 닿지 않았을 테니만,
가라앉듯이 치켜들지도 않은 팔이,
허공을 바라보는 눈이...
...
구원준,
정말 낯설게만 느껴지나요?
구원준, 지능 판정.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80 |
| 판정결과: | 실패 |
기억하나요.
혹은 이제야 떠올렸나요.
당신의 기억 저편에서 존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권우찬이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잖아요.
꿈이 아닌 현실에서.
바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입학 첫 날을 말하는 겁니다.
등굣길에서 처음 만났던 그 아름다운 얼굴은,
다름 아닌 당신을 보고서 저 표정을 지었어요.
저만큼이나, 그보다 더 선연한 절망으로 물들었어요...
사람이 떨어졌어!
누가 119에 전화 좀 해!
옥상 밑에서는 비명이 울립니다.
축구를 하던 학생들의 목소리도 잦아듭니다.
◼◼◼ 상승+4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옥상 아래에서 들려오는 것도
당신의 숨소리도
권우찬의 외침도.
어떤 이의 호흡도 이와 닮지는 않았을 거예요.
주인공은 몸을 일으킵니다.
옷에 묻어있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서는 중얼거려요.
자주 가는 카페가 오늘은 열지 않았다던가,
사려고 했던 책이 이미 팔렸다던가.
그런 아쉬움을 말하는 듯한 가벼운 어조로.
주인공: 히든 엔딩의 루트가 막혀서 저러나?
먼저 더 공략할 걸 그랬네.
이건 분명 악몽일 것입니다.
아주 터무니없이 끔찍한 악몽이요...
금방이라도 깨어나고 싶었을 겁니다.
손가락의 관절에서부터 힘이 들어가고
온몸이 경직되듯이 숨을 참아봅니다.
어떻게든 이 몽상을 회피하고 싶었을 거예요.
이것은 본능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죽음을 죽음이라 여기지 않는 태도.
꿈이라고 해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잖아요.
권우찬의 죽음을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그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무기물로 표현할 수 없지요.
우찬이가 당신의 곁에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어주었습니다.
눈꺼풀 위를 덮어내자 따듯한 체온이 느껴집니다.
살아있기에 느껴지는 온도가.

형, 옆에 있을테니까 안심하고 조금 더 자.
이제는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거야.
다정하게도 속삭여옵니다.
이제는 정말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럴 것만 같아요.
Chapter 4. 봄 소나기가 내리는 밤이야.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어두컴컴합니다.
낮이라면 형광등을 켜지 않았다고 해서
이만큼 어둡지는 않을 텐데.
새카만 창밖에서는 비가 내립니다.
토독, 토도독.
가느다란 가닥이 되어 빗물이 끝없이 떨어지고 있어요.
나무 끝마다 화사한 꽃이 흐드러졌을 텐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면
그게 다 떨어졌을지도 모르겠군요.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이 열립니다.
우찬이는 컵을 내주었어요.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따듯하고 향기로운 찻물입니다.

형네 부모님께서는 출장 가셨대.
그렇다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던 걸까요.
다정한 행동입니다.
지난 새벽이 문득 상기될 만큼...
권우찬은 말했습니다.

형, 나 좀 바래다줄래?


나 우산 없으니까... 씌워줘, 같이 쓰자.

(집에 널린 게 우산인데.) .....다 젖을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해.

에이, 그렇게 거센 비도 아닌데 뭐 어때. (어깨 으쓱)

둘이서 쓰기엔 우산들이 다 작으니까 그렇지.

됐으니까, 얼른 가자.

(현관에서 우산 하나 챙기고) 어어, 비 더 오기 전에 가자.
가끔 웅덩이가 있을 때면 보폭을 크게 하고
찰박이는 소리가 울립니다.
좁은 골목을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한쪽으로 몸을 붙이고.
그렇게 한참이나 걷다 보면 무언가 살짝 걸리적거리지 않나요.
고개를 들어보면
우산에 손가락의 지문만큼 자그마한 것이 잔뜩 붙어있습니다.
우산살 사이로 그림자가 얼룩덜룩하게 보여요.
권우찬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우산을 살살 흔들어 죄다 털어버립니다.
젖은 벚꽃이 웅덩이로 떨어졌어요.
하얀 얼룩은 보기 좋습니다.
그야말로 봄이잖아요.
그러나 우찬이는 마치 곰팡이라도 본 듯 미간을 찌푸립니다.



형은 벚꽃이 좋아?

좋지도 싫지도 않은데. 그래도 굳이 따지면 좋은 쪽에 더 가깝나.

...좋은 기억이라도 있나봐? 낭만있는 그런 거.

굳이 좋은 기억이 있어야 좋아할 수 있는 건가. 그냥, 봄이라서 핀 것 뿐인데 사람들은 환장하잖아. 그게 보기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구경하는 게? 희안하네. 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우습던데. (...) 형이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가.

싸우고 화내고 하는 사람 구경하는 것보단 웃고 떠드는 거 구경하는 게 좋지 않나? (어깨 툭) 너도 인마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살지 마. 다음엔 벚꽃 구경이라도 갈까?

물론 그것보다야 좋지만, 꽤 꼴사납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짜증난다고 해야하나. (눈 끔뻑이다가 슬 미소짓곤) 그럼 벚꽃이 조금이나마 좋아질 지도 모르겠네.

뭐 그런 걸로 짜증까지 나. 다 기력 낭비지. (머리 마구 쓰다듬어준다.) 그치? 그러면 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겠냐. 그니까 너무 싫어하지만 말라고.

(고개 살짝 숙이고 부비적) 그렇게 말한다면야, 형만 믿어야겠다. 미리 기대하고 있을게.

매년 피는 건데 너무 싫어하기만 하면 더 짜증나잖아. (쓰담쓰담) 나만 믿어. 기대 만땅 하고 (으쓱!)

(고개 살짝 들어서 물끄럼) 본인이 그렇게 말 한거다? (히죽)
아무도 없는 거리를 한참이나 걷다 보면
어느 길목에 멈추어 섭니다.

거의 다 왔으니까.
혼자 가겠다니
우산도 지금 하나만 들고 왔지 않나요.
비에 젖을 것을 염려하던 찰나 우찬이는 장난스럽게 웃었습니다.
겉옷의 주머니에 손을 푹 밀어 넣더니
접이식 우산을 꺼내 드네요.
외투의 주머니가 크기는 했지만
애초에 갖고 있었다니.
이만하면 뻔뻔함을 넘어선 경지가 아닙니까.
우찬이는 태연스레 샛노란 우산을 펼치며 말합니다.

내일은 놀이공원 가자.
나랑 가줄 거지?

같이 가주세요~ 하면 같이 가고. (흥...)

뭐야, 치사하게 이럴 거야? 내 애교가 보고싶어? (빤...)

보고 싶은데? (같이 빠아안) 안 해줄 거야?

... (천천히 다가서더니 네 뺨에 쪽, 짧게 입맞추고 떨어진다.) 같이 가주세요, 혀엉.

(제 뺨 더듬거리더니) 이... 이런 애교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는데. 같이 가자........... (귀가 빨갛다.)

이런 것도 괜찮나보네. 같이 가기로 한 거야? (키득대더니 활짝 웃음짓곤) 내일 형네 집으로 갈게.

우찬이는 손을 흔들었습니다.
자, 돌아갑시다.
늦은 시간이지만 도로 밀려드는 피로를 받아들여야지요.
향하는 길은 분명 순식간이었습니다.
나란히 보폭을 맞추는 게 아니라 홀로 걷는 걸음이었으니
갈 때보다 올 때가 훨씬 빨랐죠.
비에 젖어있는 옷이 거추장스럽지 않나요.
몸을 정돈한 후에 도로 침대로 향합시다.
분명 내일도 떠들썩하게 보내게 될 거예요.
정신없을 테고.
잠들지 않는다면 분명 피로할 겁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두 눈을 감게 되었을 거예요...
아, 하지만 무심결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꿈은 잔인하지 않다면 좋을 텐데.
오늘의 꿈이 네게 비정하지 않다면 참 좋을 텐데.
이번에 보이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 옥상만 아니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이루어지기라도 했는지
고개를 들어봅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도서실이네요.
분명 침대 위에 누워있었지만
꿈속에서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걸까요.
주위를 한 번 가볍게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구원준, 관찰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5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도서실 안은 낯익은 곳입니다.
보통 어느 학교나 도서관은 다 똑같다고 할 수 있지만
사소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오후 네 시를 가리키는 벽 시계라던가
책상에 남아있는 흠집이라거나
신규 도서 목록을 박아두는 압정의 색깔이라거나
사서 선생님이 본인 자리에 덮어둔 레이스 천 같은 거요.
이곳은 분명히 당신이 재학하는 학교의 도서실입니다.
그리고 저 끝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네요.
다름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구원준.
나무 토막처럼 바른 자세로 앉은 채
정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생기 없이 멍한 시선만 두고 있는 얼굴.
저것이 바로 내 얼굴이라니요.
거울을 보고서 따라해보려고 해도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얼굴 근육을 사용한 적이 없는 듯한 무표정.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얼굴에 당혹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한 사람이 앉아있어요.
권우찬입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채 꿈속의 당신을 바라보고 있네요.

그냥 이러고 있었구나.
권우찬은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독백합니다.
건조한 낯은 입술만을 달싹였습니다.

곧 자리에 그대로 엎드립니다.
고개를 돌린 채로 원준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요.
두 사람의 앞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없습니다.
도서실 안에 들어섰는데도 말이에요.
사서 선생님이 본다면 역정을 내실 테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것은 꿈입니다.
다른 방해는 들어올 수 없는 꿈이요.
한 사람이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고,
한 사람이 조용히 응시하기만 한다면.
당신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잖아요...
정말 이상한 꿈이지 않나요.
하지만,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을 겁니다.
권우찬이 당신을 바라보는 건 평상시의 행동이잖아요.
적어도 끔찍하지는 않습니다.
어때요,
이렇게 시선을 받는 걸 제삼자의 위치에서 보는 기분이.
안쓰러움을 느껴도,
우월감을 느껴도,
행복을 느껴도,
또 다른 감정을 느껴도.
모든 것은 당신의 죄가 아닙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어떠한 속내를 품고 있다고 해도
매우 정당한 당신만의 몽상.
이 모든 일이 정말 일어났던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처구니 없는 망상이겠지만.
그래도, 왠지 익숙한 것도 같아요.
참 이상하지요...
◼◼◼ 상승+21
겹쳐지지 않는 시선 속에서
서서히 빗소리가 멎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어지는 꿈에서 나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
Chapter 5. 특별한 너와 함께 하는 원더랜드.
어쩌다 보니 이곳에 있는 거죠.
손목에 놀이공원 티켓마저 두른 채로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봅시다.
길고도 오랜 꿈을 꾸었어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빠듯해지는 꿈이요.
어쩌면 조금 더 자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초인종 소리가 들리지만 않았다면.
문을 열자마자 이끄는 손이 있었습니다.
잠에서 막 깨어났는데도 말이에요.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뒤따라 걷게 되었어요.
사람들 사이를 걷다가, 뛰다가, 줄을 서다가.
그런 걸 반복하다 보니 정신이 들었는데...

태연하게도 이리 말합니다.
아침부터 이렇게 끌고 올 마음이 한가득하였던가요.




(곰곰...) 음, 우선 머리띠부터 맞추고 갈까? 어때. (씨익)

참나... 니가 애야? 토끼 머리띠 같은 거 씌워버린다?

애라니, 낭.만.이지. (어깨 으쓱)
흥, 형한테는 미키마우스 머리띠 씌울 거거든?

언젠 낭만 같은 건 잘 모르겠다며??
토끼보단 미키마우스가 낫지. 머리띠 맞추면 집 갈 때까지 벗지 말기.

어제 형한테 좀 배웠거든, 낭만.
오호, 먼저 말해놓고 벗으면 역적인 거 알지? (손 덥썩 붙잡더니 가게로 향한다.)

잠깐 얘기했던 거 가지고? 말이나 못하면...
(가게로 들어가 리본까지 달려있는 토끼 머리띠 든다.) 이런 거 어때. 아님 심플하게 좀 가줘?

아하, 각오했다 이거지? (씨익 입고리 올리더니 깜찍한 분홍색 리본이 커다랗게 달려있는 쥐 머리띠를 들어올린다.)
원래 이런건 커플로 맞추는 거야. (^^)

(리본 달린 머리띠 가만히 쳐다만 본다. 괜한 말을 꺼낸 기분) 너, 너. 리본 달린 머리띠 하고 다니고 싶어?? 무슨 말을 못하게 하냐. (제 손에 들린 머리띠 만지작거리더니 일단 씌워준다. 블링블링 리본 달린 토끼 머리띠...)

나? 형이 이 머리띠를 써준다면야... 난 감당할 수 있어. (처연아련가련한 표정짓기)
자, 그럼 이거 쓰고 가는거다? (바로 결제하더니 네 머리 위에 씌워주곤 방긋)

이건 진짜 배우를 했어야 했는데... 천만배우가 될 수 있는 재능을 왜 나한테 쓰고 있을까. (네 볼 꾸우욱 누르더니)
이미 결제까지 해버렸는데 어떻게 싫다고 해. (씌워줬던 머리띠도 결제하곤 네 손 잡는다.) 그래서 다음은 어딘데?

당연히 놀이기구를 타야지.
놀이공원에 왔으면 제대로 즐겨야 하지 않겠어?
우찬이가 웃으며 맞잡은 손을 살짝 당깁니다.
봄볕이 일렁이며 그의 머리카락 위로 새하얀 빛이 내립니다.

당신이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듯한 태도입니다.
언제나처럼 아름답고, 뻔뻔하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놀이공원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봄이라는 계절을 즐기고 있어요.
우리도 그 중의 일부가 되어볼 수 있겠네요.
이를테면 저편에는 [회전목마]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롤러코스터]가 있고,
근처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와 [사격장]이 있네요.
[관람차]도 좋겠습니다.





나만큼 겁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형이 걱정되니까 그렇지~ (놀리는 투)

짜아식이 누굴 놀리나. (어깨 으쓱) 안전장치 다 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누군가는 이곳을 놀이공원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누구인지는 몰라도
대단히 편견 없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해요.
한 바퀴를 돌고 떨어질 때마다 비명이 울려 퍼지는 꽃이라니.
어쨌든 무척 재미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담력만 갖추고 있다면요.
봄방학인데도 마침 줄도 길지 않으니
이 기회에 한 번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오래 지나지 않아 죄석에 올라타게 됩니다.
안전벨트를 매고,
몸을 고정하는 장치에 목을 끼웠다면 슬슬 출발할 겁니다.
어디 한 번 즐겨볼까요.
방금 막 내려서 짐을 챙기던 직전의 승객이
안쓰러운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면 착각입니다...





(손 덥썩 깍지 끼더니) 이제 늦었네?

....누가 내린대? 남자는 직진.

그 사이에 출발 신호가 울리고
기구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빠르게 레일을 내달리던 열차는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더니 팍 떨어집니다.

사방에서 살려달라는 곡소리가 먹먹하게 울립니다.
3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까지 길게 느껴질 수 있나요.
자, 좌석에서 일어나며 한 번 체크를 해봅시다.
구원준, 그리고 권우찬.
둘 다 괜찮은가요?
건강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52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속이 울렁거립니다.
아무래도 멀미가 일어난 것 같은데요.
어지러움이 남아있지만 일어나서 출어나서 출구로 향합시다.
다음 탑승객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되게 멀쩡하네.

또 탈래? (눈 반짝)


멀미하는 거 아니지?

...멀미는 무슨. 그 정도는 아니야.

...믿는다. (볼 발개져서 흘겨보더니 먼저 앞서간다.) 그럼 다음엔 어디 갈까?

(후다닥 보폭 맞추어 걷는다.) 뭐가 있더라... 사격장 갈까? 가서 내기라도 하자.

내기? 대체 뭘 걸으려고 이래?

소원권이라도 걸까?

소원권 좋지, 심플하네.
어차피 내가 이길 거니까 뭐~

자신만만하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야...?

어디서 나오긴, 자기확신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당연히 내가 이기는 거 아니야? (우쭐)

두고 봐, 누가 이기나... 소원권 줄 준비 하고 있어라?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어서 이겨줘야지. (비장)

졌다고 잉잉 울지나 마셔~ (손 잡고 사격장 안으로 들어간다.)
나란히 사격장 안으로 들어섭니다.
코르크 탄을 끼운 총으로 과녁을 맞히는 게임이네요.
다섯 개의 과녁이 있고
그 중에서 네 번 이상을 명중한다면 인형을 받나 봅니다.
그 외의 점수는 열쇠고리를 주나 봐요.
한 번 도전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런 날이 아니라면 쉽게 누릴 수 없는 여흥이잖아요.
상술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테지만,
즐거움에 한 번 휩쓸려 봅시다.



그럼 누가 먼저 쏠래?

너 먼저 할래?

그럼 나 먼저 쏠게.
하... 다 맞춰버리면 어떡하지. (중얼)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실패 |
아.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52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94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95 |
| 판정결과: | 실패 |


쓰읍...
롤러코스터를 타서 손이 떨렸나보네. 하하.

아~ 소원권으로 뭐 쓸지 생각해둬야겠다~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9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0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4 |
| 판정결과: | 실패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81 |
| 판정결과: | 실패 |
(실화냐?)





봐, 내가 이긴다고 했잖아.

거기서 거기거든? (팔 쳐내기)

하나 차이로 이기다니... 정말로 진 줄 알았는데.
(햄스터와 토끼 키링을 받아와서는 건낸다.) 자, 상품이래.

(토끼 키링만 건네받는다.) 나머지 하나는 너 가져. 하나씩 나눠가지자.

(시선 옮겨 네 쪽 보곤) 귀엽다...

전생에 토끼였던 거 아니야?

(손 뻗어서 머리띠 귀 만지작) 햄스터 형.

...햄스터는 좀 안 어울리지 않나?

그래서, 이제 어디 가고싶어 햄스터 형아?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생각할까?

그래, 늘어난 볼 얼음 찜질 받아야겠다...
놀이공원에는 사실 간식을 파는 노점도 명소입니다.
콘 위에 담아주는 아이스크림이라니
차마 시선을 떼기 어려울 것 같지 않나요.
심지어 터키 아이스크림입니다.
가끔 먹는다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맛이지요.
쫀득하게 혀에 감겨드는 우유 맛.
유혹적이지 않습니까.
다가서자 외국인 점원이 인상 좋게 웃어 보입니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2천 원입니다.
몹시 정확한 발음으로 우리 말을 구사하는게
아주 베테랑이네요.
조금 기대해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터키 아이스크림의 참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커다란 봉처럼 보이는 스쿱으로 아이스크림을 콘 위에 퍼담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저 눈은 누가 봐도 쉽게 줄 것 같지 않은데요...
현란한 동작이 이어집니다.
질 수는 없죠.
어디 한 번 아이스크림을 받아볼까요?

구원준, 민첩 판정.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형... 이런 재능을 숨기고 있었어?

어때 좀 멋있어? (으쓱)

날쌘 동작으로 낚아채 버립니다.
스쿱에 붙어있던 콘과 아이스크림을 빼앗긴 점원의 낯이 허망해 보이네요.
이렇게 낚아챈 손님은 드물다며 한 스쿱 더 떠주기까지 합니다.
하루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표정이라도 친절한 분이군요.
이제 승리의 맛을 느껴보도록 합시다.

(낼름)

(낼름...)

(한 입 더 먹기)

(폰 들고 사진 찰칵) 아이스크림 먹는 토끼

방금 뭐라고? 토끼?

내가 뭐라고 했나? (눈 데굴)

흐으음... (노려봄)
그래서, 생각난 거 있어? 귀여운 햄스터 형?

뭐야. 못들은 줄 알았더니 다 들었구만... 회전목마 어때. 유치한가?

회전목마? 나쁘지 않지. 내가 왕자 해줄게. 어때.

무슨 왕자. 백마 탄 왕자?

응, 어디에 있든 형을 데리러 오는... 어때?

난 공주님 역할이야? 좀 별론데...

그럼 형이 왕자 할래? 대신 나 찾으러 와야 하는데. (큭큭)

무력한 공주와 그걸 구해주는 용감한 왕자는 유행 지나지 않았어?

그럼 어떤 걸 하고싶은데? 궁금하게.

중간에서 만나기? 어디있든 공주는 포기 하지 않고~ 왕자도 열심히 찾으러 가고

그거 좋은데, 더 빨리 만날 수 있겠다. 서로 엇갈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엇갈리면 운명이 아닌 거지 뭐...

주변에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어린 아이들입니다.
혹은 연인이거나.
적당한 속도에서 눈을 맞추기에 좋은 놀이기구이기는 하죠.
지금 들어가면 딱 좋겠습니다.
들거가고 나면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호박 마차]와 [말]이 보입니다.
어디로 가서 앉는 게 좋을까요?





귀족답게 마차나 같이 탈까

자, 얼른 말에 타셔야죠? 곧 시작할 것 같은데.

(말 위로 올라타 벨트까지 맨다.) 타세요 공주님
그 전에, 말을 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구원준, 근력 혹은 민첩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1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멋들어지게 올라섰습니다.
우찬이는 두 손으로 손뼉을 쳐주네요.

사실, 당신이 생각하더라도 잘 올라탄 것 같긴 해요,
한 손으로 고삐를 틀어쥐며 자리에 앉는 것까지.
주변의 아이들이 웅성거립니다.
대단하다며 소근거리는 게 보여요.
그 말대로 멋졌어요, 구원준.

반할 것 같아? 이미 반한 게 아니고?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꿈결처럼 보입니다.
빙글거리며 돌아가는 회전목마에서
웃음 소리는 그치지 않아요.
우찬이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멈추고 나서야 아이들은 열린 문을 향해 쏟아지듯 달려 나갑니다.
이제 우리도 나가도록 할까요.





그래, 자기야. 우리 이제 관람차 타러 가볼까? (실실 웃더니 이마에 쪽)




어느덧 해는 완연히 저물었습니다.
하늘은 주홍빛에서 보라색이 섞이고 있어요.
파란색은 아주 자그마한 면적에 불과합니다.
사이사이에 얼룩이 진 구름이 떠다니는 사이
관람차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해는 저물어갈 테고
그때가 되면 경치를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겠지만
운이 좋네요.
시기를 잘 맞췄습니다.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올라탈 수 있겠어요.
자리에 앉습니다.
마주 보고 앉아도 좋고,
옆자리에 앉아도 좋아요.
직원은 두 사람이 들어가자 문을 닫아줍니다.
관람차는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창밖으로 시야는 점점 높아지며
사람들의 목소리도 까마득해집니다.
우찬이는 적막을 깨듯이 발음했습니다.



사실 이 놀이공원에 올 때마다 좋았던 것은 한 번도 없었는데... 형이랑 왔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지.








어느덧 해는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관람차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어요.
금방이라도 별에 닿을 것처럼 올라간 곳에서
놀이공원은 쌀알만 한 조명이 흩뿌려진 듯 하네요.
서로를 품에 안은 채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서히 졸음이 몰려옵니다.
여기서 잠들어버리면 안될 텐데.
도로 관람차에서 나갈 때 우찬이를 곤란하게 하는 짓일 텐데.
머리 위를 쓰다듬는 손이 있습니다.
다정하고도 부드러운 무언의 허락.
그 말과 함께 조금씩 고개가 기울어지지 않나요.
몸이 쓰러지는 일은 없습니다.
서로에게 몸을 지탱하고 있으니까요.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잠에서 깨야 하는데
너무나도 졸려요.
...
온 몸의 감각이 사라집니다.
남아있는 것은 그저 감각입니다.
내가 분명히 잠들어 있다는 감각.
분명 이 기분은 꿈결을 헤매고 있는 거겠죠.
구원준, 정신력 판정.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87 |
| 판정결과: | 실패 |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없습니다.
그저 정면에서 찰나의 순간
들려왔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저 방향으로 걸어봅시다.
서서히 걷다 보면 느껴지지 않나요.
이곳은 익숙한 길입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요.
학교에서부터 집으로 돌아갈 때는
꼭 여기로 향하곤 했습니다.
가장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보이는 집은
당신의 익숙한 초록 지붕의 이층 집이 아닙니다.
허름한 주택과 그 대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보여요.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양철 대문 너머로 집을 바라보던 타인이 말했습니다.

헷갈릴 수 없는 목소리입니다.
우찬이의 음성이잖아요.
우찬이는 잠금장치도 없는 문을 열었어요.
집 안으로 이어지는 문을 하나 더 열더니 신발을 벗습니다.
거실 한 가운데에 누워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었어요, 구원준.
가구 하나조차 놓여있지 않은 공간에서 홀로 누워있습니다.
우찬이는 그 곁으로 다가가서는 자리에 앉습니다.
마치 죽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자로 누워있는 몸을 응시합니다.
창 밖으로는 어두컴컴하기만 한 밤이었어요.
벚꽃이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시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달빛이 밀려듭니다.
고운 낯이 망연히 중얼거려요.

언제나 특별하게만 보였던 그 사람이 말합니다.
아득한 감정에 휘말린 채 말합니다.

형은 왜 배경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의 고통을 말하며 일그러진 웃음을 내뱉습니다.
잠에서 깨어날까 숨죽이며 어깨를 떨었습니다.
마치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는 것처럼.

해답은 찾았을까요.

분노를 품은 채 내내 웃어주었던 걸까요.

이런 적은 없었어.
정말, 단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어.
이번에야말로...
저 사람의 희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하였습니까.

형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해.
도대체, 어디에서.

정원을 무성히 채우고 있던 잡초가 사라집니다.
서서히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풀밭입니다.
가장자리의 정원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노란 꽃송이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보의 흔적을 가려버릴 것처럼 피었습니다.
노란,
아주 노란 꽃...
곧 고개를 든 우찬이는 허공을 바라봅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창 같은 게 있어요.
그 위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건드리는 것 같았어요.

주말이면 여유가 될 때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자.
정원에는 노란 꽃이 지지 않을거야. 언제나.
저녁 식사는 되도록 함께 하는 가족으로.
다정한 부모님과 귀여운 동생들과 함께...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왔다는 쪽이 좋겠어.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한 번의 목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손가락 끝이 움직일 때마다 풍경이 바뀝니다.
단출했던 집에 구색이 생기고
존재하지도 않던 안방의 문이 생기고
거실에는 푹신한 소파가 놓였어요.
텔레비전도 큰 것이 놓였고요.
마법처럼 모든 것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는 건 오직 단 한 사람입니다.
깊이 잠들어있는 당신의 머리맡을 지키는 이가 말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선택을 받았고,
사랑할 운명이 정해졌고,
완벽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권우찬이 속삭입니다.

이제, 형은 엑스트라가 아니야.
시야가 멀어집니다.
꿈에서 깨어나려는 걸까요.
추락하는 정신 속에서도 어쩐지 잊기 힘듭니다.
당연하잖아요.
가장 특별한 것을 대하는 듯한 음성을,
어떻게...
◼◼◼ 상승+30
Chapter 6. 안녕, 새하얀 봄의 로맨스.
익숙한 곳에서 두 눈을 뜹니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방 안.
몸에서 흘러 내려간 이불이 아니었다면
꿈과 혼동했을 지도 몰라요.
창 밖에서는 벚꽃이 내립니다.
새카만 밤에 아로새기듯이 하얀 꽃잎이 흐드러집니다.
정원에는 노란 꽃이 있었고요.
어떻게 우찬이가 놀이공원에서부터 당신을 옮겨주었는지
그건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을 보았잖아요.
알고 있잖아요.
그건 망상이 아닙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더라도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그건, 모두 사실이었어요.
만나야 합니다.
만나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직감이 차오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이건 본능입니다.
생을 관통하는 본능입니다.
뜨거운 것을 잡으면 귀에 손을 대고
눈이 부시면 그늘을 찾아 걷듯이.
자, 일어서서 달리도록 합시다. 구원준.
우찬이는 어디에 있을 것 같나요?

그래요, 바로 그곳입니다.
바로 그 옥상이요.
목격했을 때부터 상황은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윤리관은 머릿속에서 뒤엉켰고
죄책감은 지르밟히고 말았습니다.
살점이 터지는 소리
난간 밖으로 사람이 떨어졌는데도
아름답게 웃던 권우찬까지...
구원준, 여전히 그 모습만이 떠오릅니까?
과연 그 옥상이 여전히 주인공의 비극만으로 느껴지나요.
아니잖아요.
분명 아닐 겁니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올라갑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벅찰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달립시다.
이번에는, 내가 너를 향해서.
옥상의 문을 열어젖힌 순간
무엇을 보았습니까.
낮은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벚꽃은 땅을 겉돌기만 합니다.
이만큼의 높이까지 올라오지 못해요.
새카만 밤하늘을 보았나요.
경악해서는 이쪽을 바라보는 우찬이를 보았나요.
아니면 권우찬의 등 뒤로 있는 분홍색의 팝업창을 보았나요.
우찬이는 말합니다.
처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 목소리는 얼핏 애원을 닮아있습니다.

뒤돌아서서 나가면 안 될까?

싫어 절대 안 나가.

알아, 형은 억지로 움직이지 않지.
그러지 않는 보통의 세상을 바랐으니까.
하지만, 형이 저 문 밖으로 밀려나는 건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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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림: | 18 |
| 판정결과: | 실패 |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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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림: | 65 |
| 판정결과: | 실패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당혹을 느낀 것은 권우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 작동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알아차린 걸까요.
한참이고 제 손바닥을 내려다 보더니
고개를 듭니다.깨달음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인간은
저런 목소리를 내는 군요.

시스템 제어권이 형에게로 옮겨진 거야.
방학을 보내는 사이에.
권우찬은 당신을 바라봅니다.
밤하늘 아래,
[이 게임을 삭제하겠습니까?] 라는 팝업팡을 등진 채로.








나에겐 우리의 해피 엔딩이 떠오르지 않아. 그러니, 난 이런 선택을 하는 거야.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한 채로 끝을 맺고 싶어서.

...네가 하려는 선택이 맞는 거겠지. 만약에 정말로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너 혼자 여기에 남아있는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아. (얼굴 떼어내곤 잠시 숨을 고른다.) 그래서 끝을 맺는 건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건데?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이 좋은 건 너무 이기적인가? (작게 웃더니 제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누른 채로 낮게 말을 잇는다.) 내가 주인공을 죽였으니, 밖에서는 오류를 점검하고 있을 테고. 곧 수정을 마치고 있을거야.
그러니 끝을 맺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어.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것.

(눈가 누르고 있는 네 손 잡아 내리곤 슬쩍 웃어보인다.) 그래도 섭섭한데, 나한테 마지막 인사도 안 하려고 했어, 공주님? (누가 보아도 운 것 같은 눈가에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지운다는 건... 저 팝업창으로 지울 수 있는 건가. 진짜 게임같네, 기분 나쁘게.

(눈 감았다 뜨더니 엄지로 네 눈가에 흐른 눈물 매만진다.) 형이 잠들었을 때에 끝을 맺고 싶었어. 이 방학 동안이, 넘치도록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니까... 슬퍼지지 않도록. 근데 형도 울었네. (네 말에 큭큭대며 웃더니) 아무래도 그런가. 정말 게임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주는 거니까 말이야.
...이제 난 저 팝업창을 누를 권한이 없어. 결국 마지막에 선택하는 건 형이 하는 거지. (...) 곧 끝이니까, 한 번만 더 입맞춰줄래?

나도 행복했어. 이 방학이 마지막일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어쩌면 이렇게 될 걸 알고 방학 동안에 같이 다니자고 한 거겠구나. 생각하면 또 웃기고 그렇네. (네 손바닥에 쪽쪽, 입 맞춰준다.) 슬픈 거야,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자고 있는 동안 모든 게 끝나는 것보다는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가는 편이 더 행복해.
(...) 진짜 실감이 나네 이게 끝이라는 게... 이 세상이 사라지면, 정말 그대로 끝인 걸까. 왜, 사후세계라는 것도 있잖아. ...게임에선 그런 것도 없나? 그건 좀 끝까지 잔인한데. (입술을 포개면 따스한 살의 온기가 느껴진다. 떼어내고 싶지 않아 잠시 입술을 포갠 채로 가만히 서있다 이내 떨어진다.) 사랑해.

차라리 다음 생을 바라보는 건 어때? 누군가에게 강요당하지도 않고, 유희거리로 전락하지도 않은 채로 그저 자유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사랑을 하는 거야. 내가 이 세상의 시스템을 손아귀에 쥔 것처럼,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싶다. (네 몸을 끌어안은 채로 부드러운 감촉과 따듯한 온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을 정도로 행복하도록. 떨어지고 싶지않아 따라가던 고개가 겨우 코 앞에서 멈춘다.) ...나도 사랑해.
이 세상은 로맨스 공략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언젠가부터 자각했던 것처럼요.
평범한 주인공이 매력적인 사람들과 사건에 엮이더니
결실을 이루어내죠.
권우찬도 분명 멋들어진 말과 문장을 그려냈을 겁니다.
수집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이것 보세요.
이보다 처참한 고백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보다 적나라한 사랑이 또 어디에 있을 수 있나요.
온전한 네 곁에 있고 싶었다고
그럴 수 없는 운명이 미웠다고
그리하여 전부,
사랑이었다고.
곱게 포장할 수 있었을 텐데,
날것으로 뱉었기에 오히려 생생합니다.
그래요, 이게 권우찬의 사랑입니다.
당신에게 내어주는 구겨진 애정입니다.
이제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두 갈래의 길이 있어요.
저 팝업창에서 YES를 누르거나,
NO를 누르거나.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제는 엔딩을 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엔딩은 무엇일까요.
그 이름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YES 버튼 누른다.)
당신은 선택하였습니다.
분홍색의 팝업창 위로 손가락 끝을 대었어요.
이 세상을 삭제하는 것에 긍정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째서 수긍하였을까요.
엉망진창이었던 설득을 이해한 걸까요.
지리멸렬한 고백이 좋았을까요.
혹은,
어쩌면 당신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다시는 빼앗기고 싶지 않았을까요.
세상이 뒤흔들립니다.
새카만 하늘은 산산이 부서져 갑니다.
아주 조그마한 조각이 되어 바스러집니다.
발끝에서부터 아주 서서히.
느린 속도로 이 세상은 멸망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사라지겠죠.
데이터는 픽셀이 되어 추락할 거예요.
우찬이는 두 팔로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 순간,
말하고 말았어요.

왜 공평하지 못한 운명을 살아가야만 했던 걸까.
그럼에도...
마지막에 형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지금, 너무나 행복해.
지금 남기는 모든 말은 유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서 받아들였지요.
옥상의 벽면이 갈라집니다.
가루가 되어 떨어집니다.
조각마다 0과 1로 이루어진 땅의
유성이 되어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거예요.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에게도 다른 사랑을 할 기회가 찾아올까요?
눈을 감도록 해요.
두 사람, 이제는 같은 꿈을 꾸어요.
...
...
ENDING 3. 멸망하는 세상의 마지막 로맨스.
권우찬, 로스트
구원준,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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